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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착각,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인80프로

by 엄마는욜로족 2020. 4. 3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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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제 블로그와는 맞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 이야기가 있어야 제가 살고있는 방향도 설명이 되니까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은 아이러니 하게도 시간입니다. 되뇌어 볼수록 시간이라는 장치는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공평한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오랫동안 흘러있는 곳에 더 의미를 부여하며, 특히 한 인간을 두고 보았을때 시간이란 것은 아주 형편없이 불공평했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관광지’ 라는 것은 몇 가지 카데고리로 나눌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 물론 사람들이 많이가는 모든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기막힌 자연이 있을때입니다. 산이나 바다같은 경우가 해당하고 절벽이나 계곡, 폭포, 동굴 같은경우도 있죠. 이 것도 시간과 관계있는 것들입니다. 자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물론 다녀보면서 기막힌 자연경관인데 좀 덜유명하고 이정도까진 아닌데 사람이 득시글 거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통 교통과 관련이 있었고 (직항이 나라마다 놓여져 있는 나라라던가 하는 등의) 홍보와도 연관이 있겠죠. 일단 누군가가 여기 좋다, 고 해야 다른 사람도 가보는 것일 테니까요.
두번째는 인간이 만든 것이 조금 특출날때 입니다. 보자마자 우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죠. 놀이동산 같은 곳이나 쇼핑센터가 엄청 크고화려하다던가, 밤 야경이 예쁘다던가 하는 것들도 이에 속합니다. 이것들은 시간과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들어서 최근 k드라마나 k팝에 열광해서 우리나라에 오는 사람들도 최근에 만들어진 결과물에 기인하죠. 물론 이런것들도 시간의 영향을 받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했던 락밴드는 전설로 남거나 100년가까이 있었던 회사는 전세계인이 다 알게 된다던가 하는 시간의 요소가 분명있죠. 혼재되어 있습니다. 완전 새로운 것이라도 특출난 것이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들이 분명있습니다. (식당이 오픈하면 가본다던가 하는 것들)
세번째가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인데 현재로써보면 특출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난 것들입니다. 역사라고 칭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인간이 만들었으니 2번째 경우도 해당이 되겠네요. 대부분의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등이 여기에 해당하고 사람들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소중하게 여기는 모양을 보았습니다. 총자국이 그대로 있는 건물이 도시 전체에 형성되어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었죠. 특히 유럽여행은 이 세번째를 보러 갑니다.

이 나라 저나라를 다니면서 사람들은 (적어도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보존된 것에 가치를 매긴다, 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그 유럽풍의 거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1800년대, 1700년데 지어진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0-80년대에 지어졌다고만 해도 오래되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재건축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죠) 저는 이 성향에 대해서 어느쪽이 옳다 그르다 할 마음은 없습니다. 실제로 각 가치에는 분명한 객관적인 장점과 단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자국에서는 불편함을 못 이기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유럽거리를 걸으면서 우리나라는 다 건물을 부신다면서 부러워합니다. 분명 그 가치에는 어느정도 동의를 하는 듯합니다.

마치 시간에 중력처럼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 인간의 인생을 돌아보면 시간은 아주 어이없을 정도로 불공평하게 흐릅니다.

미국에서 미국아이가 태어나고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 아이가 한국에서는 한국아이가 태어납니다만, 그들은 태어날때는 그 정체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과 약 2년 정도 지나서 그 아기가 말을 할때쯤 되면 벌써 미국인, 한국인이 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나라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흡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엄마 아빠의 말투도 조금 닮아있고요. 먹는 식습관도 그 나라에 맞춰져 있습니다. 어떤아이는 아침에 토스트를 어떤 아이는 국에 밥을 먹게 되죠. 이 아기라는 것의 기본값이라고 할까, 이 부분이 전세계적으로 동일하다 라는 것은 제가 발견한 부분정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나중에 따로 다룰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 어린시절에 기억도 나지않을때에 일어난 일들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내 아이가 고딩인데 정말 공부에는 너무 관심이 없고 말은 너무 안듣고 대화도 없다고. 근데 고딩이면 다행인데 어떤 분은 30대가 훌쩍 넘은 자녀가 취직도 한번도 못했고 사업하라고 돈을 줬더니 돈 다 까먹었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냐고 이야기 합니다.
아이는 갑자기 십대가 되어서 반항을 한것 같지만 저의 생각은 이미 그 아이는 만 2세때 지금의 7-80프로는 형성이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것이 언제나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녀를 바꿀 키는 부모에게 있습니다. 우리아이 달라졌어요를 보다보면 실은 부모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는 바둥바둥 누워만 있고 할줄 아는거라곤 옹알이와 기어다니는 만 1세까지 엄마와의 애착관계중 8-90프로를 다 형성한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하는 말은 아니고 육아서적에 나와있습니다) 태어나고 1년이라하면 엄마아빠가 가장 잠을 못자는 시기로 여유가 없을 때입니다. 첫 아이라면 엄마 아빠가 초보라서 울면 왜 울지 이거 어떻게 해야하지 하면서 어리버리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평생을 좌우할 애착관계를 형성한다니 이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공평입니다. 우리가 부모가 어떤건지 알 한 5-6세 정도에 이게 생기면 좋겠지만 아닙니다. 실상은 0세때 아무말도 안하고 눈도 안떠서 엄마 아빠가 아직 이 아이가 한 인간이라는 자각이 없을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실험들이 있습니다만 만 1세가 지난 아이들을 데리고 애착관계가 형성이 되었는지를 볼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울고 있을때 엄마품에 들어가면 울음을 그치는데 아빠한테 안기면 더 자지러지는 경우가 그러하죠. 애착관계가 아빠에게는 형성되지 못한 경우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물론 만1-2세 라면 부모가 깨닫기만 하면 얼마든지 바꿀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중요한것은 그럴 생각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정보를 흡수하듯이 빨아들여 약 만 3세가 되면 누가봐도 스웨덴아이는 스웨덴사람처럼 행동하고 폴란드아이는 폴란드인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놀이터에 가는 것은 기본입니다.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건 놀이터는 항상가고 옆에서 각 나라마다 육아를 어떻게 하는지 공짜로(?)구경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원숭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만 3세 이하의 아이들은 우와아악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또 위험한 행동도 모르니까 서스름없이 합니다. 한국놀이터에서 보았던 것보다 원숭이들의 비율이 훨씬 많았던 점은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말은 하지 않아도 원래 애들은 이러니까, 하는 무언의 약속같은게 있는것 같아서 맘편히 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한 초등학생정도만 되면 다들 어른이 되어버린다고 해야하나요. 식당에 가면 본인 음식은 본인이 시키고, 유모차를 보면 문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한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가요.

지금은 시간에 관해서 이야기할거니 이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지만 저는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서 지속적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여기 엄빠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보았습니다) 여튼 이미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굉장히 어린나이에 이미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의 많은 것들이 정해집니다.

누군가가 그러더라구요. 커서 친구들을 보고 사회생활을 하거나 하면 변하지 않냐고 하는데, 변하긴 변합니다. 십대때는 못된아이들이 커서는 좀 착해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세계여행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무슨소리냐면 한 인간의 형태가 전세계적으로 0부터 100까지 있다고 보았을때 (성격은 간단히 수치화하기는 어렵지만 표현을 쉽게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41에서 57정도에 형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이 중간에 심경에 변화가 있어 변하더라도 42에서 48정도는 될수 있어도 절대 7이나 87은 될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이 캐나다인이나 체코인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그들이 거기서 살게되면 그들처럼 변합니다. 이것도 아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만)

한 인간에게 있어 어리면 어릴수록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중요한건 여기까지 서론인데 글이 왜이렇게 길어졌지ㅜ
그 시간이라는 개념의 궁금증에서 시작된 포스팅입니다. 결론적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은 허상입니다.
이것은 어떤 심리학자가 철학자가 한말이 아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밝혀낸 진실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과의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관측이 되지 않는 다면 모든 입자는 파동으로만 존재한다. 그 입자를 해석하지 않는다, 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 입자가 진공 상태에서 아무도 보고있지 않다면 그 입자는 파동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관측하고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입자와 입자사이의 일도 관측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에너지가 발생하기에 지금이 있다, 라는 소리입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 마지막장면에 우주에 떨어지다가 기억의 창고같은곳에 도착하죠. 이것은 전적인 허구이지만 인간이 생각할수 있는 발상에서는 이것이 한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빅뱅부터 멸망까지 한번에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단면을 보고 있다는 소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릅니다. 2차원에서 3차원을 상상하기 힘들듯이 11차원까지 있다고 하는 최근 물리학의 가설들을 어떻게 상상할수 있을까요. (비교적 최근 물리학인 끈이론의 m이론입니다) 5차원도 뭔지 모르는 걸요.

그러니 앞에 역사의 가치를 매기는 것도 순간순간이 에너지들이 쌓이는 것이니 사람들이 열광하는것이 순간 가능해보였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는 않겠지만요)

 충격적이고 혼란드러운 이야기입니다. 무한하게 쌓인 지금일뿐. 영원한 지금일뿐이라는 소리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삶을 보는 방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보았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거의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딱 오늘 내가 할만큼의 무언가를 하고 내가 행복한것에 집중합니다. 할수 있는 것을 하면 결과를 내가 조절하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 너무나 많은 감정의 소모에서 자유로워질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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